지금이 기회다 : 핵융합 상용화 카운트다운
작성자: L’etranger
출신대학: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연구분야: 핵융합 플라즈마
Q) 1억원으로 핵융합 관련 기업에 투자할 것인가?
삽니다. 지금 시점은 핵융합이 본격적으로 자본을 끌어당기기 직전인 시기이기에, 만약 핵융합 관련 회사의 주식을 정말 저점에서 매수하고 싶다면 지금만큼 좋은 기회는 없습니다.
지금은 핵융합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이 순수한 과학 연구의 영역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산업화와 상업화를 향한 전략적 분기점에 서 있는 시기입니다. 막대한 민간 자본이 유입되기 직전의 이 ‘고요한 새벽’이야말로, 미래의 잠재적 가치를 가장 낮은 가격에 선점할 수 있는,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저점 매수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융합이라는 단어 아래 묶인 기업들의 실체는 그 결이 매우 다르기에, 옥석을 가리지 못한 섣부른 투자는 막대한 기회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CFS)과 같이 핵융합 발전소의 설계도와 핵심 운영체제(OS)를 직접 개발하고 소유하려는 ‘두뇌’ 역할을 하는 기업군입니다. MIT에서 분사한 CFS가 고온 초전도체 기술을 활용해 토카막의 크기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SPARC 프로젝트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히 부품을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핵융합로의 설계, 건설, 운영에 이르는 가치사슬의 최상단을 장악하여 기술 표준과 라이선스를 통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투자의 관점에서 이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전형입니다. 만약 CFS의 소형 토카막 방식이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면, 이들은 에너지 시장의 ‘테슬라’나 ‘애플’과 같은 존재가 되어 천문학적인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핵심 기술 구현에 실패할 경우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이분법적 리스크(Binary Risk)’를 안고 있습니다.
둘째, 국내 다수의 핵융합 관련주로 분류되는, 부품과 소재, 장비,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군입니다. 19세기 골드러시 시대에 금을 캐는 사람보다 그들에게 곡괭이와 청바지를 판 사람이 더 큰돈을 벌었듯, 이들은 핵융합 기술의 최종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생태계 성장의 과실을 따먹는 전략을 취합니다. 한국의 기업들은 ITER(국제핵융합실험로)나 KSTAR(한국형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1억 도의 플라즈마를 견디는 내벽 소재, 초고진공 상태를 구현하는 진공용기, 초전도 자석 및 극저온 냉각 시스템 등 극한 환경에 필요한 부품을 제작·납품한 경험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의 강점은 이미 다른 산업(반도체, 디스플레이, 원자력 등)에서 검증된 기술력과 안정적인 매출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투자의 관점에서 이는 훨씬 낮은 리스크를 지닙니다. 어떤 방식의 핵융합이 최종 승자가 되든 이들의 부품과 소재는 필요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미 상장된 기업이 많아 유동성 확보도 용이합니다. 다만, 핵융합 부문이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은 미미하기에, CFS와 같은 폭발적인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헬리온 에너지(Helion Energy)와 같이 아예 새로운 형태의 기술을 연구하는 기업군들입니다. 이들은 토카막이라는 주류 기술에서 벗어나, 자기관성가둠(FRC)이나 플라즈마 충돌 같은 혁신적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길을 개척합니다. 개인적으로 헬리온의 컨셉에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기술적 허들이 너무 높습니다. 도넛 형태의 플라즈마 두 개를 광속에 가깝게 가속해 충돌시켜 핵융합을 일으키고, 여기서 발생하는 플라즈마 팽창으로 직접 전기를 얻는다는 개념은 물리학적으로 매우 우아하지만, 수십 년간 연구된 토카막에 비해서도 플라즈마의 안정성과 제어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둘째,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력구매계약(PPA)은 시장의 기대를 한껏 끌어올린 마케팅의 승리일 수 있으나, 그 실효성은 냉정히 따져봐야 합니다. 2028년까지 50MW 규모의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는 현재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일정이며, 계약서에는 달성 실패 시 발동될 수많은 면책 조항과 출구 전략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계약’이라기보다는, 기술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일종의 ‘조건부 현상금(Bounty)’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헬리온 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핵융합이라는 큰 틀 안에서도 가장 위험도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깊은 회의와 검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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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인트로
우주의 변하지 않는 세가지 숫자
몇 년 전, 핵융합 관련 학술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주에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숫자가 세 가지 있다. 거시 세계를 지배하는 중력 상수, 미시 세계를 지배하는 플랑크 상수, 그리고 핵융합계를 지배하는 ‘핵융합 상용화까지 남은 시간 30년’이 그것이다.”
러더퍼드의 팀이 실험실에서 최초로 핵융합을 실험적으로 성공시키고 [1], 토카막이라는 돌파구가 나온 1950년대 이후 [2] 지속적으로 핵융합 발전 상용화의 약속은 “ETA(Estimated Time of Arrival, 도착 예정 시간) 30 years”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으니, 핵융합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이런 농담이 나오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2025년 지금 시점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예전과는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학계 안팎으로 적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핵융합은 현재 우주항공산업이나 핵에너지 산업과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추측됩니다. 우주항공산업은 보잉, 록마, 에어버스 등의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이 있고 핵에너지 산업은 미국, 프랑스 등지의 시장지배적 기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각국이 국가적 이해 및 내셔널리즘과 연결되어 비록 경쟁력은 떨어지더라도 어떻게든 결과를 내고 있죠. 핵융합도 이와 비슷하게 미국, 유럽, 중국의 시장지배적 기업들과 한국 일본 등의 로컬 강자들로 재편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리콘밸리의 스푸트니크 쇼크
2021년 9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한 연구실에 정적이 흘렀습니다.[19] 빌 게이츠가 투자한 핵융합 스타트업 CFS의 엔지니어들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SPARC’라 불리는 자석에 전류가 흘렀습니다. 목표는 20 테슬라(Tesla). 병원 MRI의 10배가 넘고, 기존 핵융합 실험로(ITER)에 쓰이는 자석보다 2배 가까이 강력한,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자기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자석이 중요한 이유는, 핵융합의 오랜 난제였던 ‘크기’와 ‘비용’을 한 번에 해결할 열쇠였기 때문입니다. 1억 도의 플라즈마를 가두려면 강력한 자기장이 필요한데, 기존 기술로는 그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 건물만 한 거대 자석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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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의 건설비가 30조 원을 넘어가는 이유죠. 하지만 CFS는 ‘고온 초전도체’라는 신소재로 만든 리본 테이프를 수백 킬로미터 감아, 냉장고만 한 크기로 그보다 강력한 자기장을 만드는 데 도전한 것입니다. 몇 시간 뒤, 계측기 화면에 ‘20’이라는 숫자가 뜨자 연구실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는 세계 최초, 세계 최대인 기록적인 성공이었거든요. 이 성공은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었습니다. 핵융합로를 비행기 엔진 크기로 줄여, 공장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연 ‘스푸트니크 쇼크’였습니다. 30년 뒤에나 가능할 거라던 핵융합이 갑자기 눈 앞의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고, 이 소식에 실리콘밸리의 VC들은 수억 달러의 투자금을 CFS에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30년짜리 농담’이 더는 농담이 아니게 된 결정적 사건입니다.[19]
CHAPTER 2. 배경 및 원리
그래서 핵융합이 뭔데?
핵융합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핵융합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하는 것이 먼저겠죠? 개념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핵발전소가 주기율표에서 가장 무거운 원자들이 더 가벼운 원자핵들로 쪼개지면서, 그 질량의 차이만큼을 모두가 아는 바로 그 공식, E=mc^2 (E : 에너지, m : 질량, c : 광속)에 따라 에너지로 내놓는 과정을 사용한다면, 핵융합 발전은 반대로, 가장 가벼운 원자인 수소나 헬륨 등이 합쳐지면서 생기는 질량결손만큼을 에너지로 내놓는 방식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핵분열이 커다란 바위를 망치로 깨서 조각이 튀면서 열이 발생하는 방식이라면, 핵융합은 눈덩이 두 개를 손으로 꽉 눌러서 하나로 합쳤더니 순간적으로 뜨거운 열기가 퍼지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하나는 무거운 걸 쪼개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가벼운 걸 합치는 방식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이 둘 모두 핵 안의 질량 일부를 에너지로 바꾸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핵을 깨든, 합치든, 핵 자체에서 ‘질량 손실’이라는 물리적 현상이 일어나고, 그게 곧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를 사용한 무기가 ‘핵’이에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서 에너지로 변환된 질량은 단 0.7g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단 0.7g의 질량이 빛의 속도와 곱해져 히로시마 인구의 60% 이상을 휩쓸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핵융합에 열광할까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폐기물이 거의 없습니다. 핵분열 발전은 발전이 끝나고도 수천 년간 방사능을 뿜는 핵폐기물이 남지만, 핵융합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거의 없습니다. 둘째, 안전합니다. 핵분열은 제어를 잃으면 연쇄반응으로 터질 수 있지만, 핵융합은 오히려 조건이 깨지면 스스로 꺼지는 시스템입니다. 끝으로 셋째, 연료가 사실상 무제한에 가깝습니다. 바닷물 속에 있는 중수소 하나면, 석탄 수십 톤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바다만 있다면, 인류는 사실상 영원히 써도 될 에너지를 갖게 되는 셈이죠.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쉽다면 벌써 이루어졌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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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 그 미친듯한 효율
원리적으로는, 핵분열 발전에 사용되는 우라늄 붕괴보다, 핵융합 발전에 사용되는 중수소와 삼중수소 반응이 단위 질량당 훨씬 큰 에너지를 내놓습니다[3]. 쉽게 말해 핵융합은 핵분열보다, 같은 무게로 비교했을 때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모든 핵반응의 에너지원은 질량 결손입니다. 핵이 반응하며 일부 질량이 사라지고, 그 사라진 질량이 아인슈타인의 E=mc^2에 따라 에너지로 바뀐다고 말씀드렸죠? 중요한 건, 단위 질량당얼마나 많은 질량이 사라지는가입니다.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태우면 훨씬 많은 질량 결손이 발생하고 우라늄 핵분열보다 4배 이상 높은 에너지 효율을 보입니다.
게다가, 사용되는 연료인 수소의 동위원소(양성자의 수는 같으나 중성자의 수가 다른 원자를 말하는데, 화학적 성질은 유사하나 핵반응에서는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이기도 합니다)들은 핵분열에 사용되는 동위원소들에 비해 방사능에 대한 염려도 낮은 편이니[4][5], 이렇게만 보면 정말 미래의 에너지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더 좋은 것은, 전원이 내려가면 플라즈마를 유지시킬 수 없기에 핵분열 발전처럼 멜트다운을 일으키거나 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기기가 그냥 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다고요? 그렇습니다. 핵융합의 가장 큰 문제는 “반응이 지속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핵분열을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통제하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핵융합은 그냥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 1억도 이상의 온도를 필요로 합니다. 입자 사이에 존재하는 전기적 반발력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토카막은 이렇게 뜨거운 플라즈마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인류가 내놓은 해답 중 하나입니다. 강력한 전자기장을 통해 전기적 성질을 띤 플라즈마를 가두어서 핵반응을 유지시키는 것, 그것이 토카막의 요체입니다. (방법론을 파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개념인 토카막과 스텔라레이터, 그리고 아예 플라즈마를 가두는 접근법 자체가 전자기장이 아니라 레이저인 관성가둠법이 있지만 일단 넘어갑시다)
CHAPTER 3. 결과
핵융합의 분위기가 바뀐 이유
그렇다면 이렇게 어렵고, 상용화가 계속 미뤄졌던 핵융합이 왜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일까요? 물론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이제 본격적인 조립 단계에 들어간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국제 열핵융합실험로) 건설 등으로 쌓인 핵융합 자체의 기술적 성숙도에 더해서, 그동안의 AI, 재료공학 등의 발전으로 더 강력한 자기장으로 더 정밀한 제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학계 내적인 원인은 너무 자세하게는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학계 외부의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물리적 난제가 어떤 방법으로 해결되고 있느냐가 아니라, 돈이 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느냐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배경은 역시 기후 위기일 겁니다. 2020년대가 되며, 기후 위기는 정말 실존적 위협이 되어버렸습니다. IPCC 보고서는 심각한 기후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2도 이하로 평균온도 상승을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2030년까지는 탄소 발생량을 2010년 기준으로 25퍼센트 감축해야 하고, 아무리 늦어도 2080년까지는 순 탄소 발생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6]. 정말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 끌어와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핵분열 발전은 방사성 폐기물 문제와 사고 위험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 때문에 (특히 민주국가에서는) 신규 원전을 짓자는 논의 자체가 굉장히 힘들어졌고[7], 재생에너지들은(비록 최근에는 전력망에 연결되는 배터리 덕에 많이 나아졌다지만) 지속적이고 꾸준한 전력 생산에 약점을 보입니다. 그렇기에 핵융합은 환경적 제약이 적고,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더더욱 주목받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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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 관련 투자 현황
이런 청정에너지에 대한 수요는 기존의 공공 중심의 핵융합 연구 및 투자를 민간까지 넓히게 됩니다. 가장 유명한 예시는 빌 게이츠가 투자한 Commonwealth Fusion System (CFS)겠지요[8]. 기존 ITER보다 훨씬 작지만 더 강력한 자기장을 가진 기기로, 핵융합 에너지 최초 생산 일자를 기존 ITER 등이 계획하던 2050년보다 20년가량 앞당기겠다는 이 계획은, 민간투자 핵융합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분야에 생각보다 굉장히 진심인 나라 중 하나로 영국이 있습니다. 핵융합 기술에서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바로 ‘extrapolated Q value’ 인데요. 쉽게 말씀드리면 한 장치에 에너지를 얼마나 투입했고,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예를 들어 Q 값이 1이라면, 100의 에너지를 넣어서 100을 뽑아냈다는 뜻이고, Q가 10이면 100을 넣고 1,000을 얻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수치는 핵융합이 과연 실질적인 발전소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영국에는 핵융합 역사에서 한때 세계 최대의 토카막이었던 JET(Joint European Torus)가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투자도 활발한데요. 기존 토카막 형상에 비해 불안정성 제어 등에 장점이 있는 MAST-U[9], 해당 개념을 더욱 발전시킨 STEP[10] 등 혁신적인 형태의 토카막 개발에 상당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민관협력[11]을 통해 민간 영역의 이니셔티브를 끌어오는 것에도 상당히 진심인 편입니다.
ITER이 지어지고 있는 프랑스가 속한 유럽연합도 EUROFUSION이라는 이름으로 상당한 기술적, 과학적 노하우를 쌓고 있습니다 [12]. 하지만, 국가 주도 핵융합 투자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국가는 바로 중국입니다. 특히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이후 탄소중립에 대한 의지를 연방정부 단위에서 상당 부분 잃어버린 이후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측면에서 새로운 지도 국가가 되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이고 있고[13], 이는 핵융합도 예외가 아닙니다. 중국은 미국의 두 배 이상의 예산을 핵융합에 투자하고 있고[14], 서구 국가들과의 기술력 차이도 이 추세면 빠른 시일 내에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15]. 당장 중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대한 평가는 최근 몇 년간에 특히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바뀌었습니다. 막대한 인력과 예산으로 새로운 토카막 계획들[16]은 물론, 기존 토카막들의 실험, 시뮬레이션 연구도 어마어마하게 발전했죠[17].
한국도 이런 급변하는 핵융합 시장에 대응하여 기존 KSTAR의 업그레이드[18] 및 스타트업 창업 등이 이루어지는 중입니다. 특히 2025년 6월, 유럽에서 핵융합 사상 최대 투자 사례도 탄생했습니다. 독일의 ‘프록시마 퓨전’은 2040억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죠. 이는 현재까지 유럽에서 이뤄진 핵융합 투자 중 최대 규모입니다.[20] 참고로 프록시마는 2023년에 설립된 신생 기업입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입자물리연구소에서 분사된 기업이죠. 물론 미국의 퍼시픽 퓨전이 지난 3월 9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고, 헬리온 에너지가 4억 2500만 달러를 투자 유치한 것에 비하면 다소 적지만 유럽에서도 핵융합에 대한 거대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좋은 신호로 판단됩니다.
한국은 어떤 상황인가?
한국은 2024년 1억도 플라즈마 48초, 고성능 플라즈마 운전 100초 이상의 성과를 달성했습니다.[21] KSTAR와 ITER 참여로 세계적인 기술 기반을 구축했으나,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상용화 주도에는 자원과 생태계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연구개발비와 투자규모가 주요 국가들에 비해 크게 적을 수 밖에 없고 연구 인력 역시 부족합니다. 따라서 핵융합을 한국이 가장 먼저 상용화하여 주도국이 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주도국이 되려면 독자적 상용화 기술과 글로벌 협력 리더십이 필요하나, 국제 협력에서 의사결정 주도권은 EU와 미국에 뒤쳐지며 표준화 주도권 역시 쥐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한국의 강점은 제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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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한국은 핵융합 발전의 핵심 철강재료를 개발했습니다. 한국재료연구원의 극한재료연구소 이창훈 박사 연구팀은 초고온, 고에너지 입자 등의 극한 환경의 핵융합로에 사용 가능한 철강, K-RAFM (Reduced Activation Ferritic/Martensitic)를 개발했습니다.[22] 핵융합로는 섭씨 1억도 이상의 초고온을 견디고 고에너지의 중성자 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는 철강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철강은 크롬을 함유하고 있어 잘 깨집니다. 무엇보다 크롬은 방사능이 없던 물질입니다만 중성자에 맞아서 방사능을 띠게 됩니다. 이를 방사화(activation)라고 합니다. 방사화가 심할 수록 발전소를 해체했을 때 나오는 금속 구조물 자체가 핵폐기물이 되므로 처리가 곤란해집니다. 또한 유지보수 인력이 방사선에 피폭될 위험이 존재합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사회적 문제로 발전되므로 핵융합 상용화 가능성은 낮아지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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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에 국내 연구팀이 개발한 철강은 소량의 타이타늄(Ti)을 첨가하고 열처리 온도를 조절하여 철강 내부 구조를 아주 치밀하고 균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철강 속에는 탄소가 소량 들어가 있는데, 크롬이나 타이타늄 같은 원소가 탄소와 결합하면 탄화물이라는 단단한 입자가 형성됩니다. 이 탄화물은 작고 단단한 돌멩이처럼 금속 안에 박혀 있어서 고온에서 뒤틀림을 막기도 하고 외부 충격도 분산시키지만, 뭐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입니다. 핵융합은 초고온에서 오랜 시간 가동되기에, 이 탄화물들이 점점 거대입자를 형성하게 되고 이게 금속의 결정립계(grain boundary), 쉽게 말해 금속의 경계면에 모이게 되면 균열을 발생시키는 시작점이 됩니다. 금속이 유리처럼 뚝 부러지는 취성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금속은 본디 연성이 높아 툭 부러지기 보다 구부러지잖아요? 그런데 금속이 취성을 띄게 된다면 이건 상상 그 이상으로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단순히 망가진다의 수준이 아니라 발전소 전체 시스템의 붕괴와 안정성 상실로 이어집니다. 핵융합로 내부는 섭씨 1억도가 넘고 초고속의 중성자들이 날아다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만약 구조물이 부러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플라즈마가 밖으로 튀어나가고 자석은 망가지며, 전체 시스템은 셧다운 됩니다. 즉 철강이 깨져버리면 기껏 만들어진 인공 태양이 사라지게 되며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집니다.
즉,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지금까지의 모든 핵융합로는 ‘통제된 시한폭탄’ 위에서 실험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해야 했습니다. 먼저 이 고온의 플라즈마를 제어하고 인공태양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걸 넘어 인공 태양을 상용화하는 단계에 진입한 현재, 진짜 발전소를 짓고 운영하기 위해서, 즉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위해서는 K-FRAM 같은 구조재 혁신이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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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국의 제조역량은 앞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한국은 핵융합을 이끄는 주도 국가가 되기보다는 핵심 부품 공급망을 가진 국가가 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ITER의 심장인 ‘진공용기’를 실제로 제작했습니다. 1억 도의 플라즈마를 버텨야 하는 초고진공, 초고강도의 구조물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어려운 제조 과업 중 하나에요. 이걸 만들었다는 것은 한국은 설계도만 있으면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장치를 완벽에 가깝게 만든다는 것을 증명한 겁니다.[23]
이걸 우습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핵융합 뿐 아니라 올해 미국 SMR 기업인 테라파워와 협약도 체결했습니다. 참고로 테라파워는 빌 게이츠가 2008년 설립한 SMR 개발사입니다. 우리 기업과 기관이 핵융합을 상용화하는 것은 어려울 지라도, TSMC처럼 세계 최고의 핵융합 파운드리가, ASML처럼 세계 최고의 핵융합 장비 공급사가 될 수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 뿐아니라 두산에너빌리티도 ITER에 열교환시스템의 압력 유지와 과압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가압기를 출하했습니다.[24] 포스코와 두산에너빌리티도 KSTAR 건설에 참여했죠. 이러한 실질적인 제조 능력이야말로 화려한 투자 유치 소식이나 설계도 발표보다 더 견고하고 확실하게, 한국이 미래 핵융합 시장에서 결코 밀려날 수 없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결국 이 단단한 제조 기반이 한국의 미래 가치를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담보물인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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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 앞으로의 미래
그래서 핵융합이 되면 뭐가 좋은데?
그렇다면 핵융합이 완성된다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줄까요? 먼저, 정직하게 말하자면 에너지 가격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줄지는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핵융합만 되면 전력은 공짜라는 말은 상당히 섣부른 수사법입니다). 기본적으로 발전비용은 연료비뿐 아니라, 대지비용, 감가상각, 인건비, 건설비, 유지보수 비용 등이 모두 고려하여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토카막 시스템이던 최근 화제가 되었던 레이저 핵융합이던, 상당한 수준의 초기 건설비용이 예상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19].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핵융합은 완성되기만 한다면 인류의 에너지 포트폴리오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킬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풍력, 조력, 파력,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처럼 건설 위치나 발전 가능 시간을 따지는 것도 아니고, 핵분열처럼 심각한 정치적 이슈를 만들지도 않으면서, 화석연료처럼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것도 아닌 데다, 에너지 밀도도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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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중요한 변수는 ITER(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의 존재입니다. ITER은 국제적으로 공동 개발 중인 핵융합 실험로로, 인류가 핵융합 에너지를 실용화할 수 있는지 실증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프랑스 남부에 위치해 있으며, 미국과 EU, 일본, 중국, 대한민국 등 7개국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ITER의 목표는 핵융합 반응을 국제 협력을 통해 재현해 보자는 겁니다. 핵분열이 군사 기술로 시작됐다면, 핵융합은 비교적 일찍부터 국제 협력의 프레임 안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냉전 시기 핵분열은 철저히 폐쇄적인 기술이었죠. 반면 핵융합은 애초부터 오픈소스적 협력 모델에 가까운 프로젝트였고, 그 흐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국제 협력 기조는 최근 몇 년간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이 고립주의적 노선을 강화한다면 국제 공동연구는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요. 트럼프 행정부가 과학기술 R&D에서 국제 연대를 얼마나 더 약화시킬지 여부는, 핵융합 개발의 속도와 방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
그렇다면 주요국들은 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예를 들어 한국처럼 전력 시장이 국가 통제에 가까운 구조에서는, 초기 설치비가 큰 핵융합 발전이 공공 인프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반면 민간 에너지 자유화가 이뤄진 미국 같은 나라들에서는 누가 비용을 감당하고, 수익을 회수할지를 놓고 훨씬 더 많은 정치·경제적 논쟁이 벌어질 수 있겠죠. 민간 기업들이 전력을 생산하고, 공급하고, 가격도 정하고, 이윤도 챙기는 구조이므로 한국처럼 한전이 거의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과는 다릅니다. 핵융합은 초기 설비 투자 비용이 천문학적인데, 이 많은 돈은 대체 누가 낼 것인가, 민간이 모두 부담할지 아니면 정부가 보조금을 줄지, 미래의 수익은 어떻게, 누가 가져갈지에 대한 복잡한 사회적 갈등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논의를 조금 더 넓히면,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바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아마존 같은 거대 테크기업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전 세계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대체 에너지원을 탐색하고 있으며, 독립형 발전소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한국은 의외로 다른 종류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핵융합 장치는 구조가 복잡하고, 정밀 부품 수요가 많은 만큼 공급망 안정성과 제조력이 중요해지는데, 이런 면에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뛰어난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만약 미·중 관계가 지금처럼 불안정한 상태로 핵융합 상용화 시점을 맞는다면, 한국은 서방의 핵융합 생태계 안에서 ‘신뢰 가능한 조달처’로서 새로운 전략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핵융합의 타임라인이 훨씬 가까운 미래로 조정된 현재 시점에서, 앞으로 20년은 핵융합 발전소 건설을 위한 기술을 완성시키고 결과를 내놓으려는 각 플레이어들의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 같은 회사나 중국의 실증로 등은 시작일 뿐이고, 유럽이나 일본 등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곧 상용화를 위한 플랜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투자의 관점에서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저점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중요한 것은 인류가 핵융합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글을 시작하며 소개했던 농담을 들은 행사에서 들었던 다른 농담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핵융합이 언제 상용화되느냐고요? 인류가 마치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행하던 미국처럼 정말 절박해지는 그 순간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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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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