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에선 탈락한 한국 기업
이들이 만든 약은 아직 사람에게 단 한 번도 투여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 파마는 이 약에 최대 7,7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걸었습니다.
이것만 보면 한국 바이오의 대형 성공 사례처럼 보이죠. 그런데 몇 달 뒤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이 약을 만든 한국 기업 소바젠이 코스닥 기술성평가에서 탈락했습니다.
해외 제약사는 수천억 원을 걸었는데 한국에서는 상장 첫 관문조차 넘지 못한 겁니다. 대체 누가 잘못 본 걸까요?
뇌를 잘라내는 대신, 원인을 건드린다
소바젠이 개발 중인 약은 난치성 뇌전증 치료제입니다. 뇌전증 환자 가운데는 여러 약을 써도 발작이 잡히지 않아 결국 발작이 시작되는 뇌 조직을 잘라내는 수술까지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그렇게 수술하고도 상당수 환자에게 발작이 계속된다는 겁니다. KAIST 이정호 교수 연구팀은 여기서 아예 질문을 바꿨습니다.
‘어떻게 발작을 멈출까?’가 아니라 ‘도대체 왜 발작이 시작되는가?’로 말입니다.
연구팀은 일부 환자의 뇌세포에만 숨어 있는 MTOR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유전 신호가 단백질로 만들어지기 전에 RNA 단계에서 끊어버리는 약까지 만들었습니다. 그게 SVG105입니다.
쉽게 말하면 고장 난 결과가 나올 때마다 막는 게 아니라, 고장 난 명령 자체가 전달되지 않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아직 임상도 안 했는데...
SVG105는 아직 사람에게 투여되지 않았습니다. 쥐에서 잘 됐다고 사람에게 잘 듣는다는 보장은 없고, 원숭이에서 안전했다고 환자의 발작이 멈춘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 파마는 관심을 가진 거지요. 쥐에서는 발작이 줄었고, 사람 신경세포에서는 비정상적으로 폭주하던 신호가 정상 수준으로 내려왔거든요.
원숭이에서는 약을 마지막으로 투여한 뒤에도 12주 동안 뇌의 mTOR 억제 효과가 유지됐습니다.
안젤리니는 중추신경계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제약사입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투자자가 ‘한국 바이오니까 한번 질러본’ 게 아닙니다.
뇌질환 약을 직접 개발하고 판매하는 회사가 임상에 들어가기도 전인 물질의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물론 7,700억 원 전부가 당장 소바젠에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개발과 허가가 잘 진행돼야 단계별로 받을 수 있는 최대 계약 규모입니다. 그래도 사람 데이터조차 없는 물질에 글로벌 제약사가 이런 계약을 맺었다는 건 꽤나 흥미롭죠.
그런데 한국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한국은 BBB·BBB
2026년 2월 소바젠은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성평가에서 BBB·BBB를 받았습니다. 상장 심사로 넘어가려면 최소 A·BBB가 필요했으니 탈락입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저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이 또 좋은 기술을 못 알아본 건가?”
그런데 소바젠과 비슷한 뇌질환 신약 기업 아델은 사람에게 약을 투여한 임상 1a 데이터를 확보한 뒤 사노피와 최대 10억4,000만 달러 계약을 맺었습니다. 기술성평가는 A·BBB였습니다.
에임드바이오는 여러 후보물질을 동시에 개발하면서 해외 제약사와 반복해서 계약을 만들었고, 기술성평가에서 A·A를 받은 뒤 실제 코스닥 상장까지 갔습니다.
안젤리니 파마가 산 것은 SVG105라는 약 하나의 미래 가능성입니다. 이 약이 성공했을 때 시장이 충분히 크다고 판단하면 10개 중 9개가 실패하더라도 한 개의 성공에 베팅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제약사의 사업입니다.
반면 코스닥 심사는 질문이 다릅니다. “이 기술이 대단한가?”만 보는 게 아니라, “이 회사가 지금 일반 투자자의 돈을 받을 만큼 준비됐는가?”를 봅니다.
SVG105는 당시 아직 비임상 단계였습니다. 사람에게 투여한 데이터가 없었고, 계약의 선급금 규모도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파이프라인도 존재하지만 아델이나 에임드바이오처럼 여러 자산에서 사업화 성과가 쌓인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소바젠이 더 재미있는 이유
병의 원인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것과 좋은 약을 만드는 것은 다르고, 좋은 약을 만드는 것과 사람에게 효과를 입증하는 것도 다르며, 좋은 약을 가진 것과 좋은 상장사가 되는 것 역시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소바젠은 이 가운데 어디까지 왔고, 도대체 무엇이 아직 부족했던 걸까요?
이번 리포트에서는 소바젠의 실제 전임상 데이터부터 안젤리니가 무엇을 보고 계약했는지, 그리고 A·A를 받은 에임드바이오, A·BBB를 받은 아델, BBB·BBB를 받은 소바젠을 비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