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의 진짜 힘의 축은 생각보다 조용한 곳에 숨겨져 있더라. “누가 금을 캐든 상관없이, 곡괭이와 삽을 파는 쪽이 더 안정적으로 돈을 번다”고 하는데, 나는 이게 반도체 산업에서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고 느낀다.
삼성에서 일하던 시절, 수율이 급락한 날이면 새벽 3시에 라인에 들어가 데이터를 뒤져야 했다. 그때 결국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건 언제나 계측 데이터와 레이아웃,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시뮬레이션이었다. 반대로 지금 Siemens EDA에서 Calibre/OPC/MBR을 다루면서 보니, 공장 입장에서 보던 ‘수율의 엔딩 시점’이 이번엔 ‘설계 단계의 출발점’으로 보인다.
어느 쪽에서 보든 결론은 같다. 실제 라인에서 벌어지는 변동을 설계·마스크 관점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고 보정하느냐가 앞으로의 반도체 경쟁력을 결정한다. 그래서 나는 EDA를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반도체 산업의 숨은 꿀단지, 혹은 보이지 않는 운영체제(Operating System)에 가깝다고 본다. 이 판단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누가 이기든 EDA는 항상 판 위에 있다. 엔비디아가 질주하든, AMD가 역전하든, 혹은 새로운 AI 팹리스가 등장하든 상관없다. 어떤 회로를 설계하든, 어떤 구조를 만들든 결국 EDA를 통하지 않으면 칩은 한 발짝도 현실에 닿지 못한다.
둘째, 공정이 어려워질수록 EDA 의존도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2nm, GAA, High-NA EUV는 더 이상 ‘공정 엔지니어링만 잘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물리적 한계·랜덤성·확률적 결함을 모델링하고, 설계 관점에서 먼저 보정해야 한다. 이 영역은 사람의 직관보다 수학과 알고리즘이 더 정확하다.
셋째, EDA 비즈니스는 고마진·구독·락인(lock-in)이라는 가장 완벽한 조합을 갖춘다. 반도체 제조사처럼 수십조 원을 시설 투자에 묶지 않아도 되고, 메모리처럼 시장 가격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고객사는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쉽게 갈아탈 수 없고, 유지보수와 라이선스 비용은 꾸준히 흐른다.
나는 엔지니어로서의 경험과 투자 관점의 계산을 모두 더해 보면, EDA는 앞으로 10년 동안 소리 없이 가장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산업의 판도를 조용히 결정하는 영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세계일 수 있다.